Skip to content

text

江花島-rivers, flowers, island

This work was not made by using the camera lens with the zoom-in or zoom-out technique. It was taken by multiple exposures with the tripod fixed and by focusing every part that is included in the camera viewfinder. This has the same process as human see objects or the scenery. when human look at the landscape, he does not perceive the object by focusing the different distances at the same time but by recognizing the distances individually and integrating the information in the brain to understand the object correctly. This work is my own interpretation on this ‘the process human understand the subject’.

이 작업은 카메라 렌즈를 이용하여 줌 인이나 줌 아웃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킨 후에 카메라 뷰 파인더에 포함되는 모든 부분을 각각 초점을 맞추면서 다중촬영(multiple exposure)을 한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대상이나 풍경을 바라보는 과정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 볼 때, 가까운 곳이나 먼 곳을 동시에 초점을 맞추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거리를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스스로의 두뇌를 통해 종합하여 이해를 하게 됩니다. 이 작업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

 

인터뷰

모대학 큐레이터 학과 학생과의 인터뷰

*작가님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 졌음 하나요?

누구나 그러 하겠지만, 나도 내 작업이 보여 지는 이미지로써 훌륭한 흥밋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원래 미술. 시각 이미지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요? 백문이불여일견(百問而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시각이미지는 보여 지는 형식과 그것에 의한 흥미 유발이 가장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작업 스타일(?)이 진행되기까지의 생각의 여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나의 작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보여 지는 사물이 ‘왜 이렇게 보이는 가?’ 와 ‘그렇다면 이렇게 볼 수 있고 또한 이런 모습으로도 보여 줄 수 있겠구나’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접근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신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업은 무척이나 진부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개인적인 것은 그냥 개인적인 것’ 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 작업이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본인의 개인적 신상이나 감정에 관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은 우선 유클레이데스 기하학보다는 위상기하학을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위상기하학을 참고했던 이유는 첫 번째로 ‘신기하다’입니다. 두 번째로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잘 ‘맞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만화나 공상과학 소설, 백과사전, ‘세상에 이런 일이… 불가사의…’ 류의 책을 좋아 했던 저로써는 그야말로 빠져 들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평면화 시키고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전이 시키거나 평면에 공간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차원의 개념인 시간의 흐름을 디지털(이것은 물론 제 개인적인 이해 일 수도 있습니다.) 처럼 시간의 단편을 모아 하나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회화를 사진으로 바꾸고 사진을 회화로 바꾸려는 일을 시도 하려고 합니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깐 수학이랑 과학을 잘 아시는 거 같으세요~

그러한 학문을 접하게 된 배경이나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신가요?

잘 알지는 못 합니다. 제가 알고 싶거나 필요한 부분은 약간 아는 편입니다. 이러한 것 들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는 위에 언급 했듯이 어렸을 적의 치기 어린 호기심 덕분입니다. 당시에 저한테는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물론 현실 도피에 기인 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에 정말 사는 게 힘들었었습니다. 경제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목표와 꿈에 대해 듣고 싶어요.

꿈은 좀 엉뚱합니다. 3차원이 이곳에 4차원의 공간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혹, 누구는 인간의 공간이 4차원이다. 라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원래 그러하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도 과학이나 물리는 철학과 같다고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현상에 대한 예측과 결과를 말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개똥철학’입니다. 그것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거 다하다 죽고 싶습니다.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요즘 하는 생각들.

앞에서 밝혔듯이 회화를 사진으로 바꾸고 사진을 회화로 바꾸려는 일을 시도 하려고 합니다.

*작가가 안됐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거 같으세요?

애니메이터가 되지 않았을까합니다. 원래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저에게는 애니메이션은 환상적인 사건입니다. 그림이 움직이다니…

*작가여서 좋은 점과 나쁜 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같이 일하기 힘들었던 큐레이터 (스타일) 같이 일하기 즐거웠던 큐레이터.

일하기 좋은 큐레이터는 작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큐레이터입니다. 작가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선별된 작가라면 큐레이터 본인도 관심이 있는 작가 일 텐데, 대부분의 큐레이터는 전시 진행에만 신경을 씁니다.

큐레이터에 느낀 점은 작가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획한 전시에 관련된 작가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서라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누구든지 자신에 대해 이해를 해주는 사람은 정말 고맙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녀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전 미혼입니다.

*혈액형?

O형입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제일 잘한 일이 무엇인 것 같으세요?

무슨 일이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 일은 잘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 달 후 미리 세워둔 계획이 있으신가요?

최근 몇 년간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돈벌이에 급급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작업에만 열중 할 것입니다.

*좌우명 혹은 자신만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별 다른 것은 없습니다.

‘The magic of photography’. The museum of photography’ 전시에 관련된 설문 내용

1.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있다면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샌디 스코글런드. 사진은 사실만을 재현한다. 그러나 그녀는 허구의 상황을 만들어 재현한다. 하지만 허구의 상황도 역시 실재 존재 하였기에 사진으로 재현된다.

2. 본인이 생각하는 사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사진이라는 매체를 작업으로 끌어들인 이유와 관련하여 설명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의 글은 오로지 본인의 작업에서만 허용되는 경우입니다.

-사진의 매력은 실재하는 대상을 손쉽게 재현해 낸다. 잘 찍은 사진이든 못 찍은 사진이든지 그것은 실재의 사물이나 상황을 말해준다. 그게 사진의 매력이다. 나는 사진의 재현성에 감사한다. 그리고 사진의 평면성에 관심을 둔다. 사진은 구부러지면 곤란하다. 구부러지거나 구겨지면 왜곡이 생긴다. 구겨진(구부려진) 인화지에 프린트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진의 정보가 왜곡이 된다. 왜곡이 되면 사진의  재현성에 문제가 생긴다.

3.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작품을 제외하고) 인상 깊게, 혹은 재미있게 본 작품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현미 작가, 사진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사진.

4. 사진전문 미술관으로서의 한미사진미술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에 관해서 상당히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매체로써의 사진’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들이 한미 사진 미술관에서 다양하게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

Thought-002

All objects that exist have their proper space. The proper space has the exterior properties of the object.

One can easily understand the space occupied by an object by imagining a transparent bottle plunged into orange jelly. The space that the jelly can’t infiltrate is the proper space of that transparent bottle. Like this, the proper space of an object provides information on the object, serving as the ensemble of properties and space that distinguish the object from others.

It is what everyone knows that the space possessed by an object is worked on in many ways by a lot of people. Indeed, I acknowledge that we have myriad such cases around. At this point, I want to say that it differs from the previous expression of spatiality. Just as the proper space bears characteristics of objects, I want to express my unique traits. Let me put the distinction this way.

Arrange paper cups inside a 1m x 1m x 7.7cm box. This way, we get tiny lozenge-shaped empty spaces among cups. The space would be what ‘s left out of the total space as the papers cups fill in. (The cylinder-shaped space inside the cup has to be omitted for simpler explanation.) The space I want to express is not the space in the transparent bottle buried in the jelly, but the space occupied by the jelly minus the glass bottle. Rather, the space for the jelly testifies to the space for the bottle. Here, my work intervenes, and the object of my expression is not simply of a physical volume but of the space that contains the information that an object has. I express the paper cups while taking advantage of the space among the paper cups, but I focus on expressing the actual information on the cups, instead of just showing the form of the abstract space.

생각-002

존재하는 물체는 어떠한 경우든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 고유의 공간은 물체 자신의 외형적 특성을 나타나게 된다.

물체가 점유하는 공간은 오렌지색 젤리 속에 투명한 병이 빠졌을 때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젤 리가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이 바로 그 투명한 병 고유의 영역이다. 이처럼 물체 고유의 영역은 그 물체의 정보를 나타내어 주며, 다른 사물들간에 구별이 되는 특질과 공간으로 자리 매김 된다.

물체가 가지는 공간을 여러 가지 방법들로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재로 우리 주변에 널리 산재해 있음을 긍정하는 바이다. 물론 나는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기존의 공간성 표현과는 다르다고 말 할 참이다. 고유의 영역이 사물들간에 특징을 지워 지듯이 나도 여기서 나만의 특질을 표현하고 싶다. 내가 말하는 그 구별 점이란 이러하다.

종이컵을 1m x 1m x 7.7cm 의 상자에 깔아 놓아보자. 그렇게 하면 컵과 컵 사이에 마름모꼴의 작은 공간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상자의 전체 공간에서 종이컵의 부피를 뺀 공간일 것이다.(이때 종이컵 안의 원기둥 모양의 공간은 쉬운 설명을 위해 생략하기로 한다.) 즉 내가 말하고 싶은 혹은 표현하고 싶은 공간은 젤리에 빠진 투명한 병의 공간이 아니라, 유리병을 뺀 나머지 젤리의 공간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 나머지 젤리의 공간이 바로 유리병의 공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나의 작업이 개입이 되는데,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양(量)의 표현이 아닌 물체가 가지는 고유의 정보도 함께 담은 공간의 표현인 것이다. 종이컵 사이의 공간을 이용하여 종이컵을 표현하되, 그냥 추상적인 공간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실제 컵의 정보를 표현하는데 작업의 초점을 둔다.

—————————————————————————————————————————————————————————–

a stuffed ~ or a stuffed cogito

I think that most aspects of art in general are established through the re-creation of images or objects.

The resultant re-creation of images will be altered and distorted before it gets expressed on a canvas or in other products. But such re-creation has an artist’s feelings deeply involved, and is thus to be decided by the degree of his or her involvement, thoughts, and skills. After all, the audience is provided with a base for judgment of tastes.

For this reason, a good image or the re-creation of an image that facilitates a high level of responsiveness and understanding is done by the artist’s taste or relevant judgment and then determined by the reaction from the audience.

Reproduction that  ‘a stuffed~’ is going to do will not deviate far from this category. Here is a point in which  ‘a stuffed~’ wants to show discrimination. Reproduction of images or objects that ‘a stuffed~’ talks about is neither abstract nor ambiguous. It also intends to eliminate artificiality as much as possible. Besides, ‘a stuffed~’ dreams of more material and physical reproduction. Reproductions by  ‘a stuffed~’ reveal more of the medium itself rather than they are transformed and distorted by paints or other media; sometimes, original objects and images to be reproduced will be revealed as their own bodies.

If I narrow this down to a small category, a stuffed~’s work reproduces images or objects and lets images or objects with physical properties reappear. Reproduction here doesn’t mean to revert to the original state or become a statue.

These outcomes appear as stuffed objects, photos or objects that have been taken apart then put back together. Stuffed objects are reproduced and they aim at reconstruction. Such general characteristics of stuffed objects lie in reproducing obsolete and dead things though they were living or possibly used. If they are just made into stuffed objects, they would not overcome the fate of mere decorations.  ‘a stuffed~’ wants to add spices to this. Added spices make existing objects or images step aside into a slightly different direction, but they do not make objects pass by into an utterly different direction. Physical property and information of objects are kept up as they are.

~ Samples of manipulation and processing

~ Art gallery (a stuffed object of artifacts)

~ Taxidermy – a way of reproduction

~ Movie set

As is well known, taxidermy is a skill that applies preservative treatment for organisms not to decay when it has died to maintain the shape from their living days. That is, it is a kind of specimen. Specimens are the whole or part of natural objects used in biology, paleontology, medicine and mineralogy for the purpose of education or instruction.

Their main objective lies in reproduction. It lies in how similar the reproduction is to the appearance when living or in expressing as it is.

As it should be the same as facts, how much can it aspire to contact facts?

Artists can have desires for reproduction whatever work they do. Whether it is reproduction of facts, meanings or images. As all those reproductions border on some other meaning that stuffed objects has, paintings themselves have dreams to be originals by reproducing something. Can an artist’s work be the original? What process of treatment and certification does it have to go through to be the original?

Stuffed objects are never original. Though it is covered with the skin from a dead animal, the original has already died. It is just like a tribal chief in the era of tribal nations who wears tiger skin cannot be a tiger. The opposite cannot be established either. It cannot be called a replica because a stuffed thing itself is the original. It is hide that was left behind by a tiger that has already died. Paintings with globs of paints had to relinquish reproduction of facts after the emergence of photo. Ironically, however, a well-taken photo pales in comparison with the original. A photo of vast Grand Canyon is nothing but a sheet of sensitized paper lying before Grand Canyon itself.

Taxidermy is shamanistic

Mummies made with aspirations for the dead to rise up are typical of taxidermy. Mummies wholeheartedly longed to have time taxidermied. Taxidermy of specimens is like that. Though it lacks shamanistic content, it is an act to halt time or state. As for sacred objects that long to see the presence of a god, can a god really exist there?

Objects, space or humans were taxidermied by paintings and paintings were taxidermied at museums or galleries while a photo taxidermies time or space. Then taxidermy stuffs itself and it is expressed by making a reproduction that prevails over the original. Stuffed object from which its soul has departed argues that it is the original of itself before its demise. Though the body left behind after its death is closer to the original than sculptures of a sculptor or paintings of a painter, it fell into a situation where it cannot advocate its originality itself.

Artists want to prove their existence value through their works. Replicas may not be their dream. Now, many images copy and reproduce one another. It has become a situation in which everything has been mixed up so that no one knows which the original is. Things that haven’t risen up to the level of taxidermy are attempting to create their own status.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According to Descartes known for his methodological scepticism, it means, “Though all in the world is illusory by a devil and my consciousness is deceived by the illusion, I myself who is deceived certainly exist as I think.”

– Cartesians were obliged to be satisfied with the uncertainty of science because they believed that the God was almighty and the godly will was completely free. From this faith comes a conclusion that can make even an inconsistency into a truth if the God that created all truths including mathematical truths and natural principles as well as physical world had limitless intelligence and free will. In contrast, human intelligence is finite. Therefore, humans can have confidence only in “cogito” and revealed religion. Cartesians did not draw scientific truths out of religious knowledge as the Roman Catholic Church did. Thus, they were obliged to accept scientific knowledge as uncertain and probable.

Cartesians advocated metaphysical dualism that the world consists of the two finite entities of spirit and matter. The substance of spirit is self-conscious thinking and the substance of matter is an extension of third dimension. God makes humans that is the fourth complex entity by combining spirit and the body as the third infinite entity based on the substance of inevitable existence. Humans gain general knowledge of spirit, matter and god by contemplating innate ideas. When humans gain special knowledge on incidents happening within the world, they rely on movement that lets perceptible notions occur in the spirit after they are transmitted from sensory organs to the brain through nerves. Like this, Cartesians argued that they could know of external world by perceptible notions that exist in the spirit.

This dualism of spirit and matter brings forth serious problems concerning causal interaction and knowledge. They are: If humans are complex entities made up of two different entities of two kinds of substantially different matter, how can the body let the spirit possess perceptible notions; how can the spirit make the body move; how can the spirit know of physical world by perceptible mental notions? The Cartesian philosophy grew into several lines, responding to such questions differently from one another. -(quoted from an encyclopedia)

An interesting expression. Human as a multiple reality … . Only matter remains in a taxidermied piece where the soul has departed. Can one inject cogito into taxidermy?

The original copy that no longer exists (spiritually affected)

Taxidermy

1. Reproduced painting

2. Reproduced sculpture

3. Reproduced photography

4. Reproduced video

5. Reproduced image

What procedures should accompany the efforts in search of essence?

a stuffed ~ 혹은 a stuffed cogito

일반적인 미술의 대부분의 양태가 이미지나 사물에 대한 재생산으로 성립되어진다고 본다.

이때 일어나는 이미지의 재생산은 작가 고유의 감수성에 의해서 변화되고 왜곡되어지며, 이것이 캔버스나 여타의 생산물로 표현되어 질 것이다. 헌데 이러한 재생산은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의 감정이 깊게 개입되며, 작가 개입의 정도나 작가의 생각 그리고 그의 기술에 의하여 판가름이 나게 된다. 결국 관람자로 하여금 취미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좋은 이미지. 혹은 호응도와 이해도가 높은 이미지의 재생산은 우선 작가의 취향이나 그에 따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며 다음으로 괸람자들의 반응으로 결정되어진다.

a stuffed ~가 하려는 재생산 역시 이 범주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a stuffed ~가 스스로의 변별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지점이 있다. a stuffed ~가 말하는 이미지나 사물에 대한 재생산은 추상적이거나 모호하지 않다. 그리고 최대한 작위성을 배제하고자 한다. 또한 a stuffed ~는 좀 더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재생산을 꿈꾼다. a stuffed ~의 재생산물은 물감이나 혹은 다른 매체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되어지기보다는 좀 더 매체 자체가 드러나기도 하고 혹은 재생산되어질 원래의 사물과 이미지들이 자신의 몸 자체로 보여 지게 될 것이다.

좀 더 범위를 좁혀 말해 본다면 a stuffed ~의 작업은 이미지나 사물을 재생산하여 다시 물질성을 갖는 이미지나 사물로 재현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재현은 다시금 원래대로 환원되거나 동상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러한 결과물들은 박제나 사진. 혹은 분해되어 재결합된 사물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박제는 재생산되는 것이며, 재현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박제의 일반적인 특성은 사물이 살아있었거나 혹은 사용되어 졌던 것이었으나, 현재는 쓸모없어지고 죽은 것들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있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그냥 박제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일종의 장식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a stuffed ~는 여기에 조미료를 첨가하려고 한다. 첨가된 조미료는 기존 사물이나 이미지를 약간 다른 방향으로 비켜나가게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물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지나가게 하지 않는다. 사물의 물질성과 정보성은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조작 가공 표본

~미술관 (미술품의 박제)

~박제 ~~ 재현의 한 방법

~영화세트

박제는 이미 주지하다시피 살아 있었던 생물이 죽었을 때 이를 부패하지 못하도록 방부하고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이다. 즉 표본의 일종이다. 표본은 교육이나 지도의 목적으로 생물학, 고생물학, 의학, 광물학 등에서 사용하는 자연물의 전체거나 부분이다.

이것들의 주된 목적은 재현에 있다. 얼마나 실존해 있을 때와 흡사 한가 혹은 그대로를 표현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과 같아야 하며 사실과 맞닿기를 얼마나 열망하고 있을 것인가?

어떤 종류의 작업을 하더라도 미술가들이라면 재현에의 욕구를 가질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재현이든지. 의미에 대한 재현이든 심상에 대한 재현이던지 말이다. 그 모든 재현은 박제가 갖는 또 다른 의미와 맞닿게 되는데, 회화는 무엇인가를 재현하여 스스로 원본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작가의 작업이 과연 원본이 될 수 있을까? 원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처리 과정과 인증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박제는 결코 원본이 아니다. 죽은 동물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원본은 이미 죽어 버린 것이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 부족국가 시대의 부족장이 호랑이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반대도 성립이 어려워 보인다. 복제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박제 자체가 원본이다. 이미 죽어 버린 호랑이가 남긴 것이 바로 가죽이기 때문이다. 물감 덩어리의 회화는 사진이 나온 이후로 더 이상 사실에 대한 재현은 버려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아무리 잘 찍은 사진도 원본 앞에선 범 앞에 하룻강아지다. 드넓은 그랜드 캐니언의 사진은 그랜드 캐니언 앞에선 그냥 감광유제가 뭍은 종이 일 뿐이다.

박제는 주술적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길 바라면서 만든 미이라가 그 대표일 것이다. 미이라는 시간을 박제하길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다. 사실 표본으로써의 박제도 그러하다 주술적인 내용은 빠져 있겠지만, 시간이나 상태를 멈추기 위한 행위이다. 종교에서 신이 깃들어 있기를 바라는 성물들은 과연 신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을까?

사물이나 공간 혹은 사람이 회화에 의해 박제 되었고 회화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박제가 되었으며, 사진은 시간이나 공간을 박제화 한다. 그리고 박제는 스스로를 박제 하여 원본을 누르고 재현으로써 표현된다. 영혼이 떠나간 박제는 그가 그 이전(죽기 전)에는 스스로의 원본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남긴 그 육체는 조각가의 조각이나 화가의 그림보다는 원본에 가깝지만, 스스로도 원본임을 자처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복제품이 그의 꿈은 아닐 것이다. 현재 많은 이미지들이 서로 복제하고 재생산을 하고 있다. 모든 게 섞여버려서 무엇이 원래의 ‘원본’인지 아무도 모르는 난해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박제의 수준에도 못 오른 것들이 자신의 지위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방법적 회의 데카르트의 주장에 의하면 ‘이 세상이 악마에 의해 모든 것이 일루전이어도 나의 의식이 그 일루전에 속고 있어도 내가 생각하고 있으므로 속고 있는 나 자신은 반드시 존재한다.’ 라는 뜻이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이 과학의 불확실성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신은 전능하고 신의 의지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에서 물질세계뿐 아니라 수학의 진리와 자연법칙 등의 모든 진리를 창조한 신이 무한한 지성과 자유의지가 있기만 하면 모순조차도 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간 지성은 유한하다. 따라서 인간은 ‘코기토'(cogito)와 계시종교에 대해서만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처럼 종교적 지식에서 과학의 진리를 이끌어내지는 않았다. 따라서 실제로 그들은 과학지식을 불확실하고 개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세계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2개의 유한실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주장했다. 정신의 본질은 자기의식적인 사유이고 물질의 본질은 3차원의 연장(延長)이다. 신은 필연적 실존을 본질로 하는 제3의 무한실체로서 정신과 육체를 결합하여 제4의 복합실체인 인간을 만든다. 인간은 본유관념을 사유함으로써 정신·물질·신에 대한 일반지식을 갖는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특수한 지식을 얻을 때는 감각기관에서 신경을 거쳐 두뇌로 전달되어 지각가능한 관념이 정신 속에 일어나도록 하는 운동들에 의존한다. 이처럼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정신 안에 존재하는 지각 가능한 관념들에 의해 외부세계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은 인과적 상호작용과 앎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인간이 정신과 물질이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2개의 실체로 이루어진 복합실체라면, 육체는 어떻게 정신이 지각가능한 관념들을 갖도록 할 수 있는가, 정신은 어떻게 육체가 움직이도록 할 수 있는가, 정신은 어떻게 감각가능한 정신적 관념들에 의해 물질세계를 알 수 있는가 등이다. 데카르트주의 철학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서로 다르게 답하면서 여러 노선으로 발전했다. -(다음-포털 사이트 DAUM- 백과사전에서 인용)

재미있는 말이다. 인간은 복합실체라니… 정신이 떠난 박제는 물질만 남아있다. 박제에 코기토(cogito)를 주입 할 수 있을까?

대리인(proxy)

최근에 보고 있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말이다. 제목이 에르고 프록시.(ergo proxy) 여기에 오토레이브(아마 auto rave 일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용어를 그럴 듯하게 잘 지어낸다.) 가 코기토(cogito) 바이러스에 걸리면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는 설정이 있다. 아직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전체 23화인데 8화를 보고 있다. 여기에 쓰인 단어들의 뉘앙스를 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존재론적인 물음에 관한 내용일 것 이다. 여기선 오토 레이브는 안드로이드여서 인간에 의해 생산되고 있는 물질일 뿐이지만, 인간들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섹스를 통해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필요에 의해 생산되고 필요한 곳에 배치된다. 인간과 오토레이브의 차이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식(영혼) 능력이 있고 오토 레이브는 박제처럼 껍질만을 갖고 태어난다. 오토 레이브는 코기토(cogito)를 얻음으로써 원본이 된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 부분에서 부터는 갈등이다. 화려한 액션과 멋진 그림들이 참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예전에 보았던 공각 기동대(ghost in the shall)나 메트릭스 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껍데기에 스스로를 볼 수 있는 인식 능력이 생기면 그것은 원본이 생기는가? 공각 기동대에서는 껍데기는 껍데기이고 자아라는 의식도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과연 실존 하는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가짜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넋 놓고 살 수는 없다.(물론 살고 있는 게 아니라도) 모든 것이 거짓 일지라도 나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어차피 가짜라도 내가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내가 완전히 존재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낱 사념 덩어리에 불과하더라도 어떠한 혹은 무언가일 가능성은 남아 있으니깐- 왠지 데카르트 같은 느낌이다.

본질을 찾으려는 행동들은 어떤 과정이 수반 되어야 할까?

—————————————————————————————————————————————————————————–

Thought-001

The human body vibrates at 7 megahertz. This vibration is stretched out to the entire universe instantaneously. Likewise, every object is spreading its information towards the universe at its a unique wavelength. I sit here now giving off all of my information as well. The information is expanding towards the universe like getting to be a huge giant and eventually is extended to the whole universe.

Let me speak about the basic principles of the hologram. Drop three pebbles in a bucket of water and freeze the water at the same time. The frozen water holds the ripples formed when stones fell into the water. Frozen ripples intersect, and the intersections make the nodes between the ripples. Now, let’s makes a hologram with these. Let this ice of ripples be exposed by laser light from different directions. (This, of course, has a complex path, but will be omitted here.) Let the laser light reflect through a reflector (or prism) for the reflected laser lights from different directions to flush with each other, and form an image in the air, showing three stones. This, in turn, means that the wavelength contains all the unique information of that object.

If you possess the clairvoyant power, you are the person who but can read these ‘nodes of wavelength’ of objects.

Often a photo substitutes the original. The moment we see the pictures of Dabotap or Seokgatap in Bulguksa, Gyeongju, we sometimes fall into the illusion. We feel this is real Dabotap. Shortly after that we to go to Bulguksa holding the Dabotap picture. We stand in front of Dabotap. At the moment, we look at the Dabotap photo. At that moment, the photo is no longer that Dabotap. The subject the picture represents disappears; and a piece of paper remains. The moment the picture meets the real, it is not a thing anymore. I think this is the fate of the poor pictures.

And I dream the photo rose again to represent the target of the original.

Some methods to revive the pictures. I dream that pictures represent the target or the equivalence of the object. I think my movements so far were in the sake of this. Now here’s one more of those examples. This proposal is about these hopes of mine.

It is the main idea of the work to convert a certain place to the equivalent, to the structure equivalent to my thought. Take a shot of the selected place (gallery space or others) with a film camera first of all. For instance, if the space is a cubic structure, I take the picture of wall, floor, and ceiling all.  Afterwards, I make a small-scale structure proportional to the real one. The structure is made ​​in the same form, but differ only in proportion to the original (expect 30~50% of the original). Bear in mind that the mockup is not a copy of the external shape of the original but a scaled-down model of the interior shape. Attach the taken pictures to the mock-up. The pictures should be attached as opposed to the real structure. Ceiling is to the ceiling, and the photos of the wall and floor are attached to the corresponding part of the original. This will be exhibited in the space to be displayed and pictured, hanging in the air. Visitors will have the experience to walk ​between the walls of the real structure and the made structure; here are displayed other works on the wall in the displace space, and also on the walls with the scale-down works of the corresponding wall.

If the reduced photo structures spread making ripples, as I wish; and the moment ripples have the wavelength of the real walls and hit the actual wall, the pictures are not the records of the existing or existed objects any more, but can be treated as the equivalence of the same objects existing, of course, in different time frame.

생각-001

인간의 몸은 초당 7메가헤르쯔의 진동을 갖는다. 이 진동은 순간적으로 전 우주로 뻗어 나게된다. 그리고 모든 물체는 고유의 파장을 갖고 저마다의 정보를 우주를 향해 퍼트리고 있다. 난 지금 여기에 앉아서 나의 모든 정보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점점 거대한 거인이 되듯이 온 우주를 향해 확대되고 커지고. 결국은 온 우주로 확장한다.

홀로그램의 기본 원리에 대해 말하겠다. 양동이에 물을 담고 돌멩이 3개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양동이의 물을 얼린다. 얼은 물은 돌멩이가 물에 떨어질 때 생긴 파문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얼려진 파문은 서로 교차되어있고 이 교차는 파문간의 결점을 만들게 된다. 자. 이것을 가지고 홀로그램을 만들어 보자. 각기 다른 방향에서 레이저를 이 파문의 얼음에 비춰 보면. (이것은 물론 복잡한 경로를 갖고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이 빛을 반사판(혹은 프리즘)을 통해 굴절 시켜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비춰진 레이저가 서로 맞닿게 하여 공중에 맺혀진 영상은 바로 3개의 돌이 보이게 된다. 이것은 결국 파장이 물체 고유의 정보를 모두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천리안이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이러한 물체들의 ‘파장의 결점’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리라.

사진은 원본을 대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집에 앉아서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이나 석가탑의 사진을 본다. 그 순간 우리는 착각에 빠진다. 이것이 마치 실제 하는 다보탑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다보탑 사진을 들고 불국사로 간다. 그리고 다보탑 앞에 선다. 그 순간에 다보탑 사진을 바라본다. 그 순간 사진은 더 이상 다보탑이 아니다. 사진이 대상을 대변하는 역할은 사라지고 눈앞에는 종이 한 장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진은 실제와 만나는 순간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이것이 불쌍한 사진의 운명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난 사진이 다시 살아나 원본의 대상을 대변하게 되기를 꿈꾼다.

사진을 살리는 방법 중 몇 가지. 난 나름대로 사진이 대상을 대변하는 혹은 대상과 동치가 되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여태껏 나의 움직임들은 이것을 위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서 그 몇 가지 중에서 하나를 더 만들어 보려고 한다. 이 계획서는 이러한 나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

특정한 장소를 그것과 같은. 아니 내 생각에 같아지게 되는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작업의 주요 발상이다. 선택되어진 공간(화랑 공간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라도)을 우선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한다. 직육면체의 입방체 구조를 갖는 공간을 예로 든다면, 벽면, 천장, 바닥을 모두 촬영한다. 그 후에 그 구조물과 비례하여 구조물 보다 작은 스케일의 구조물을 만든다. 그 구조물은 원래의 구조물과 비례만 다를 뿐 동일한 형태로 제작되어 진다.(실제 구조물의 50 – 30%의 비율을 예상한다.) 단, 만들어진 구조물은 원래의 구조물의 외곽 형태를 옮긴 것이 아니라 내부의 형태를 축소 한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구조물에 촬영한 사진을 붙인다. 붙여진 사진은 실제 촬영되어진 구조물과 마주보는 형태로 붙여진다. 천장은 천장을 향해 붙여지며, 벽면이나 바닥 역시 서로 실제의 구조물과 마주보는 형태로 붙여진다. 그리고 이것은 전시되어질 그리고 촬영된 그 공간에 놓여지게 되며, 공중에 매달린 형태이다. 관람객은 실제 구조물의 벽과 만들어진 구조물과의 사이로 통행하는 경험을 얻게 되며, 여기에 또 다른 장치는 전시되어 질 공간에 다른 작품들이 벽면에 부착되며, 축소된 구조물의 마주보는 면에도 같은 비례로 축소되어 붙여진다.

만약 나의 바람대로 축소된 사진 구조물이 파장을 발생하여 퍼져 나갈 때. 그리고 이 파장이 실제의 벽면과 같은 파장을 지니며 퍼져나가 실제의 벽면과 부딪히게 되는 순간.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물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그 존재와 같은. 물론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같은 물체로써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Fruits and vegetables

I am going to depend on multiple exposure for this work.

I always have to keep in mind the relationship with long exposure, doing this multiple exposure. It is because viewers do not distinguish long exposure from multiple exposure and furthermore, I myself thought of (or devised) multiple exposure, fascinated by long exposure.

As you know well, long exposure means exposing film to light for a long time (meaning the shutter speed of less than one-60th of a second). Though long exposure doesn’t create any problems with photographing still objects, there occurs a fatal weakness (of course, within my thought) when photographing moving objects. It is a problem that arises from reproducibility of facts that is one of the innate traits of photographs. When moving objects are photographed through long exposure, recorded data is distorted. This is the very distinction that my work has.

As I want to work on this, superficial feature that is represented would be to revert to black-and-white print and a cube that are photographed through multiple exposure.

To be more specific, objects to be photographed first are fruits and vegetables. For example, if I photograph an apple through multiple exposure, I photograph it, cutting it bit by bit. Printed outcomes through multiple exposure would look as if the apple faded away or grew vivid. Also, the apple made into a cube would be made, divided as many times as multiple exposure. Each piece of the apple would have its cut inner section photographed along with the outer look of the apple.

If long exposure is the whole of a radish (vegetable), multiple exposure is a form that takes a wanted part out of a radish cut into pieces of proper size. While in long exposure several times are shown over several times, only a few chosen times out of several times are shown in multiple exposure, eliminating room for distortion in reproducing an object.

Conclusively, this work is an explanation about multiple exposure. The cube would also appear as part of an explanation as to multiple exposure. It is because multiple exposure is an effective way for me to express the compression of space and time that I always wanted.

과일과 채소 ( fruits and vegetables)

우선 이번의 작업은 다중촬영 기법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나에게는 늘 이 다중촬영을 하면서 장노출과의 관계를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유는 일단 보는 관람객들이 장노출과 다중촬영을 구분하지 못하는 점이 있으며, 더 큰 이유는 제 자신이 이 장노출 이라는 기법에 반하여 생각(고안?)하게 된 것이 바로 다중촬영이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장노출은 필름에 장시간(일반적으로 60분의 1초 이하의 셔터 스피드를 말합니다.) 동안 빛을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장노출은 움직이지 않은 물체를 촬영할 경우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움직이는 물체를 찍을 경우엔 치명적인 약점(물론 저의 생각내에서 말입니다.)이 생기게 됩니다. 그건 사진이 가지는 고유의 성격 중의 하나인 사실에 대한 재현성에서 생기는 문제인데. 움직이는 물체가 장노출로 촬영 될 경우 기록되는 정보가 왜곡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제가 하는 작업이 가지는 변별력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작업을 하려는데 나타내어지는 외형적 특징은 우선 다중촬영 된 흑백 프린트와 입방체로 환원시키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선 촬영되어질 대상은 과일과 채소 류 입니다. 이것을 예를 들어 사과를 다중촬영을 한다면, 사과를 조금씩 잘라 내면서 촬영을 합니다. 다중촬영 하여 프린트 된 결과물은 사과가 조금씩 없어지거나 점점 선명하게 보여지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입방체로 만들어진 사과 역시 다중촬영 된 횟수만큼 나뉘어져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사과의 외형과 더불어 안쪽의 잘려진 단면까지 촬영되어 만들어 질 것입니다.

장노출이 무우(채소)의 전체라고 한다면 다중촬영은 무우를 적당한 크기로 토막을 낸 후 그 중에서 원하는 부분만 취한 형태이며, 장노출은 여러 시간이 여러 시간에 걸쳐져서 보여지는 것과 달리 다중촬영은 여러 시간 중 몇 개의 선택되어진 시간만을 보여주므로 대상에 대한 재현에서 왜곡의 여지는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작업은 다중촬영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들입니다. 입방체 역시 다중촬영의 설명의 일환으로써 보여 질 겁니다. 다중촬영은 늘 내가 원했던 공간과 시간의 압축을 표현하는데 나에겐 유효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

2003. 06. 10.

If an object releases its own information continuously or forever, and the released information is what represents all it has, it is necessary for us to listen to it.

The innate energy that matter has is revealed in specific wavelengths by various objects. Such a specific wavelength would spread into a wide space, being scattered far, with its own information of an object.

Where would this limitlessly spreading wavelength or its own information stop? That ending point would not stop in a certain space. It would stop its movement in a place where something collides.

The point where something collides. In fact, I am curious about what it should collide with to halt rather than the point of collision. That is what I am curious about and the point. If I come to stop, when is it and when is the moment? What is the environment that would dominate when I stop? What I am looking for is that and I want to find it my own way.

2003년 6월 10일

물체가 자신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아니, 영원히 발산하고 있다면, 그리고 발산하는 정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정보라면 우린 충분히 그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에너지는 각기 다른 사물들이 서로 다른 에너지로써 자신만의 특정한 파장을 드러낼 것이다. 이 특정한 파장은 당연히 물체 자신만의 정보를 지닌 채 멀리 멀리 확산되어 넓디넓은 공간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이렇게 끝없이 확산되어 나가는 파장은 혹은 자신의 정보는 어디쯤에서 그 걸음을 멈추게 될 것인가. 그 끝나는 지점은 어느 공간에서 멈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부딪히는 장소에서 그 움직임을 멈추게 될 것이다.

무언가 부딪히는 지점. 사실 그 부딪히는 지점보다는 무엇과 부딪혀야 멈추게 되느냐가 더 큰 궁금증이다. 바로 이것. 내가 궁금한 것이며, 그 지점이다. 만약 멈추게 된다면 그건 어느 때이며, 언제이며, 어느 순간인가. 그리고 그 멈추는 순간에 지배하게 될 그 환경은 무엇인가. 내가 찾는 건 바로 그것이고, 그것을 내 방식대로 찾으려 한다.

—————————————————————————————————————————————————————————–

space-overturning – fine apple

Let’s look at a hexahedron. A hexahedron has 12 corners. The corners of a hexahedron have a protruding shape with two sides meeting when seen outwardly while they have a shape jutting out when seen externally. Let’s record this by taking a picture. Both protruding corners and sinking corners are plane. Sharp nails and knife blades are plane. It could be a result of inference by experience that nails and knife blades on screen look sharp when we look at a photo that has been taken well or a picture. What I say is well known to everyone. So it may be banal. Though it may be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the structure of a complex object, it is also novel that complex cubes become plane. Take a picture of anything. To see whether it becomes three-dimensional. Round one is plane. Square one is plane. Protruding one and sinking one are plane.

It was a football that I took a picture of first. It is simple. After taking pictures of a football from 6 angles, I printed and pasted them together according to their angles. A square football was made. I believe in the planeness of pictures and the reproducibility of facts.

Both pictures and photos are plane. There is only one reason why I use photos. It is because what I take a photo of looks far more genuine than what I paint. While someone says that a picture looks more realistic than a photo, I have never seen a picture that looks more real than a photo. So I take photos even though I majored in painting. Reproducibility that I believe in is just this. Ah, there is one more. Pictures can be drawn on a wall or a bent wall, however, photos cannot be printed on a bent photographic paper. It can be done forcibly but there is a problem that it is out of focus. Photos that are usually plane can be bent but bent photos are distortions of reality.

space-overturning – fine apple

육면체를 보자. 육면체는 12개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육면체의 모서리는 외부에서 볼 때. 두 면이 만나 돌출된 형태를 가지며, 내부에서 볼 때는 밖으로 튀어 나가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자. 튀어나온 모서리나 들어간 모서리든 둘 다 평면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못이나 칼날도 평면이다. 우리가 잘 찍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화면상의 못이나 칼날이 날카롭게 보이는 이유는 경험에 의한 추론의 결과물 일 것이다. 이런 말들은 누구나가 다 아는 것들이다. 그래서 진부한 것 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잡한 물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 대단한 어려운 것이겠지만, 아무리 복잡한 입체라도 평면이 돼버리는 것도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뭘 찍어봐라. 입체가 되나. 둥근 것도 평면. 네모난 것도 평면. 튀어 나오거나 들어간 것도 평면이다.

처음으로 찍어 본 것이 축구공이었다. 간단하다. 축구공을 여섯 각도에서 찍은 후 인화해서 찍은 각도대로 붙인 것이다. 네모난 축구공이 만들어졌다. 나는 사진의 평면성과 사실에 대한 재현력을 믿는다.

그림이나 사진이나 둘 다 평면이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이용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사진으로 찍는 것이 내가 그리는 것보다 훨씬 진짜 같아서 이다. 누구는 사진보다 진짜 같은 그림~ 운운하지만 난 한 번도 사진보다 진짜 같은 그림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회화를 전공 했음에도 사진을 찍는다. 내가 믿는 재현력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아! 하나 더 있다. 그림은 구부러진 벽이나 꺽인 벽에도 그릴 수 있지만, 사진은 구부러진 인화지에 인화를 못한다. 하려면 억지로 할 순 있겠지만 초점이 안 맞는 다는 문제가 생긴다. 일반적으론 평면인 사진을 구부리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구부러진 사진은 실재에 대한 왜곡이다.

——————————————————————————————————————————————————————————

Go-around

Jeong-Jun, Gwon

You can‘t see a three-dimensional (3D) object from on point of view.

A newborn baby who is not only unable to move himself freely but also is unable to shake their head. But there is a question as to whether a child can be able to understand the size of objects?

If an early prehistoric sees the Empire State Building for the first time is he able to estimate even size of the building?

In other example there are full moon and a ball above night sky.

When you look at them from the ground they look exactly in same size can you distinguish which one is actually bigger?

It could be that the ball is bigger than the moon but further or smaller but closer. The only way to find out the truth is to fly to where the ball is.

Likewise, to get a better idea of 3D objects you should go-around the objects. As I mentioned earlier with one point of view you can‘t seize the whole information.

As we are keep moving around the object and putting an effort to learn to get better ideas, we can see 3D object more correctly even though our sense of sight is plane.

Few years ago I was into a trend game called Virtual Fight II which 3D affect system has been used on this game and this affect rouses an illusion as if the character is in real as I play the game.

While enjoying myself with this fascinating game suddenly, it occurred to me that what makes many people go crazy about this game.

Pondering on this question for hours, I‘ve come to conclusion that Flow-motion affect, showing the object in every angle in turns continuously, often used in TV advertisement, is the answer to it.

And my project is very much base on this idea.

Also I have used an East Traditional point of view, which puts all attention to all parts, rather than a Western perspective representation way.

With a perspective representation an object can be prevented in showing the whole parts. And same as an East Traditional point of view, the way of an American Indians drawing can show the object better in drawing.

Like drawing a 3D square shape on a paper, those walls are have to be lie down beside of each edge. It might be looks scribbling but this way you can show the real 3D square shape and perspective representation way can‘t do the job well.

In my project I presented all parts of object in every different angle.

I took photos from above to below and left to right in 360 Degree and reallocated to make easy for audience to have a look at it.

In an effort to the audience only have to look at my work without moving around just like watching a monitor.

I also used The Phase Variation Geometry theory in reallocating photos.

This is like if you draw a triangle a rubber and starched it out, this triangle can change into round or another shape and length or density can be changed also, but when it comes to a photo that length remain still. Only difference is whether you used 1 cut film or 20.

In another words when you taking a 1M length in photo, 1 cut film can show it in 1 cut and 20 cuts are in 20 cuts. And that length of the 1M is still the same but depend on how many cuts presented in photo the physical length can be changed.

My work might looks done by a fisheye lens but a fisheye lens can affect the same result as a rubber and it can prevent my work. I would like to stress that my work has an independent sights in every side indeed.

As we become accustomed to Digital System we may fail to notice efforts. For example ‘Macaroni Western’, showed various Flow-motion affects, but only a few people appreciated the work.

Of course, this is a usual thing now days, yet if we didn‘t take basic steps like this we couldn’t meet The Digital World now.

After all, a human only can see 2D vision not 3D.

Go-around

권 정 준

공간을 점유하는 대상은 하나의 시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 태어나서 눈을 뜨고 무엇인가를 보기시작 할 때. 바로 그 순간 움직이는 것은 물론 고개를 돌리는 것마저도 허용이 되지 않을 때 인간은 사물의 부피를 이해 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 선사시대의 원시인이 있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빌딩. 우리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라고 부르는 거대한 건축물을 보았을 때. 그는 이 건축물의 구조는 차치 하더라도 그 크기를 과연 가늠 할 수 있을까?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둥근 공이 떠있고 그 옆에 둥근 보름달이 떠있다. 그 둘은 땅에서 보기에 크기가 똑같다면 과연 어느 것이 더 큰지 가늠할 수 있을까? 공이 작은데 달보다 가까이 있어 똑같아 보이는지 달보다 훨씬 큰데 멀리 있어서 같아 보이는지 그건 알 수 없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단하나 일 것이다. 직접 하늘을 날아서 공이 있는 곳까지 가봐야 알 일이다. 인간은 공간을 점유하는 물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물체를 둘러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물체의 한 쪽 면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각은 지극히 평면적이다. 우리가 사물을 입체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몸이 쉬지 않고 움직(학습과 경험)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오락실에서 3D게임인 ‘virtual fighter2’ (1)라는 오락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이 때 나는 ‘3D’가 왜 이렇게 강한 매력을 갖는가에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 3D그래픽은 마치 실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실재감은 영화에서의 현실감과는 다른 것이다.(2)- 3D컴퓨터그래픽이 강한 실재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물체의 여러 각도의 모습을 끊어지는 cut이 없이 연속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러하듯이 컴퓨터로 만들어진 대상의 여러 가지 각도의 정보를 보여 줌으로써 그것이 실재하는 듯 한 착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가 슬라이드 필름을 계속 돌려서 보여 지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리고 한때 CF에서 많이 연출되었던 Flow – motion(3)과도 같다. 이러한 효과들은 낯선 느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현실의 상황에서 항상 부딪히고 있는 일들이다. 단지 타자화 된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의 작업의 시작은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대상을 3D로 표현하려는 것보다 3차원의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대상의 모든 부분들을 제시한다. 모니터처럼 관람자들은 한 시점에서 사물의 모든 부분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서양의 전통적인 원근법과 투시법과는 거리를 갖는다. 서양의 전통적인 시점으로는 너무 편협한 정보만을 제공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잘못된 정보를 강요함으로써 관람자의 시각을 한정되게 옭아맨다. 오히려 이것은 동양의 전통적인 시점이나 아메리카 인디오들의 시점과 연관 있다

————————————————————————————-

– 잘 그려진 그림. 혹은 잘 찍은 사진을 보았을 때 우리는 정서적으로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그것이 사실적이라 느껴질 때 그것은 사실인 것일까? 우리는 화면상의 일루젼이란 말을 많이 들어왔고. 또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적으로 보이는 사진이나 그림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이 사실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림이나 사진을 매개체로. 자신의 감정을 마치 실재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들도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 한 일이다.

(1)’virtual fighter2’ Sega Seturn enterprise. LTD. 1995년. ‘virtual fighter1’ 의 후속 작. 본격 3D대전 게임으로 출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전에 있던 2D 액션 게임과는 다른 그래픽으로 후에 나온 ‘철권’이나 ‘Dead or Alive’,‘Soul Edge’등이 연이어 출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2)영화의 필름은 대상의 정보를 그대로 필름에 옮겨 담는다. 필름은 정보를 그대로 Copy하여 가지고 있고 우리는 실물이 아닌 대리물을 바라봄으로써 현실감을 느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말하는 리얼리티는 그것이 실재 존재하는 상황이나 물건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상 사리에 맞는가, 틀리는가를 구별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3D그래픽을 보면서 그것이 현실에서 존재 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3D그래픽의 탄생 목적 중에는 아날로그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3D그래픽의 목적은 아날로그의 완벽한 재현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는 듯하다.) 컴퓨터로 아날로그의 재현을 위해선 많은 수학적 계산을 요구한다. 좀더 정교한 그래픽이란 보다 완벽한 이진법의 계산과도 같은 의미 일 것이다.

3D 그래픽은 이전에 보아왔던 그림보다 정교하다. 우리가 소위 2D라고 지칭하던 만화나 그림보다 각각 한 장 한 장의 그림이 명암이나 색, 빛의 표현이 훨씬 정교하다. 2D에서의 그림과 3D에서의 그림을 한 장 만 비교해서 보아도 훨씬 입체감이 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정교한 그림 (계산)이 연속적으로 보여지면 우리는 그림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선택의 문제가 생긴다. 물체 1M의 길이를 몇 장의 그림으로 나누며 어느 부분은. 혹은 어느 각도는 생략 할 것인가.[물론 랜더링은 컴퓨터가 한다. 그러나 컴퓨터도 모든 부분(각도)을 랜더링 한다고 생각 할 수는 없다. 정사각형을 메워버린다는 페아노 곡선의 점들도 결국은 정사각형을 다 메울 수 없듯이 확대를 거듭 할 수록 비는 부분이 생길 것이다.(벡터를 사용하는 랜더링은 다른 결과가 나타나겠지만)]를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A라는 점이 a에서 b로 이동 할 때 그 길이 만큼의 변화를 1mm의 단위로 혹은 더 세분화하여 나노미터의 단위를 사용하여도 결과는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디지탈을 아나로그로 환원하여 보여주는 창인 모니터의 해상도(픽셀)의 범위에 의해 판가름이 난다

(2)Flow – motion : 하나의 정지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여 연속적으로 영사하는 기법. 존 포프 (영화 매트릭스 촬영 담당) :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 120대의 카메라로 전체를 에워싸고, 1초에 100프레임씩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1초에 12,000프레임을 찍는 초고속 촬영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Full-cel 애니메이션처럼 다양한 액션 장면을 찍을 수 있다. http://matrix.channeli.net/After/After_index.html

——————————————————기 위하여 부단한 움직임을 갖는다. 마치 처음 보는 물체인양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며 촬영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행위들은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당연한 움직임들이지만 간과되어 지는 것들이다. digital시대에서 이런 행위들은 거추장스럽고 미련한 행동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이 없이는 digital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아니 digital은 존재하더라도 인간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눈으로 본다는 것은 2D일뿐 3D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카로니 웨스턴(4)이 나오면서 우리들은 그 현란함에 현혹되어 그 과정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멋진 3D그래픽이라도 결국은 대상을 힘 안들이고 둘러보게 하는 것 뿐 이지. 그곳에 거창한 원리는 없는 것이다. 나는 대상의 모든 부분들을 촬영하여 재배치를 한다. 제자리를 찾은 사진들은 관람자들로 하여금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행하여야하는 움직임의 수고를 덜게 해준—————————————————-

이미 주지하다시피 동양의 원근법은 하나의 시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물체나 공간에 독립된 자신만의 시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오의 경우 관찰되는 대상이 중심이 되어 보이는 그대로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네 면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그리게 되면 담은 각 방향으로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이것은 서양의 원근법으론 정확하지 않은 그림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낙서한 듯한 이 그림은 사실 대상의 입장에서 볼 땐. 정확한 그림이 될 것이다.

나는 공간을 가지는 대상을 촬영하다. 관람자들을 대신하는 나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대상의 모든 부분들을 촬영한다. 위에서 아래로 360도. 그리고 좌에서 우로 각각 360도 촬영한다. 이것을 재배치 할 때는 공간의 위상적 변이(5)에서 참고를 하였다. 비록 내 작업이 전단사 함수(6)가 되진 않지만. 그리고 실재 사물과 동상이(7) 되지는 않지만 나의 상상력에는 큰 도움을 주었다. 배치의 전체적인 외양은 탄성력이 좋은 고무로 만들어진 입방체의 한 부분에 칼집을 내어 상하 좌우로 잡아 당겨 평면이 된 상태(8)(물론 나의 상상력에서)와 흡사하다

————————————————————————————-

(4)󰡑황야의 무법자󰡑󰡐장고󰡑등으로 잘 알려진 서부 활극 영화. 이탈리아 감독이 만든 미국 서부영화란 의미로 사용된다. 가장 유명한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로써 황야의 무법자 외에 속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원스 업온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등의 작품이 있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정통 서부 영화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내가 가장 관심있게 바라보는 부분은 편집이다. 이전의 서부영화의 결투씬을 보면, 멀리서 두 총잡이의 모습이 보여지고 곧이어 총을 빼든다. ‘탕’하는 소리가 메아리치면 한 사람이 쓰러지고 이긴 사람은 총구에서 나오는 연기를 입으로 분다. 여기서 편집은 ‘NO CUT’이다. 그냥 멀리서 촬영하며 한 사람이 쓰러질 때 까지 카메라의 움직임이 없다. 이에 반하여 마카로니 웨스턴의 카메라는 역동적이다. 대결이 시작된다. 순간 카메라는 대결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클로우즈 업 하여 번갈아 보여준다. 그 뒤 총을 뽑는 손도 번갈아 보여준다. 갑자기 화면 가득히 하늘이 채워진다. 곧이어 들리는 총성. ‘탕’ 다음 화면은 결투를 하던 한 사람의 등. 그는 맥없이 쓰러지고 Out Focus되었던 승리자의 모습에 카메라의 초점이 맞아진다. 마카로니 웨스턴에서는 중간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 과정은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는 전재가 붙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화면 편집이 가능해진 것은 관객들이 정통 서부극이나 일상생활에서 이미 학습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5)유클레이데스 기하학에서는 합동인 도형은 서로 구별하지 않고 ‘같은’도형으로 간주한다. ‘합동’이란, 움직여서 서로 겹치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상기하학에서는 도형의 운동은 크기와 모양이 바뀌어 질 수 있는 탄성운동이다. 즉 자르거나 덧붙이지 않으면 같은 도형이며 자르거나 덧붙이면 다른 도형이 된다. 어떤 다른 도형으로 변형 할 수 있는 것끼리는 ‘같은(동상)’것으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도형의 위상적 성질이란, 동상의 도형이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이며, 이 뜻으로 동상인 것은 토폴로지(위상기하학)에서는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토폴로지의 세계에서는 둥글거나 네모이거나, 길거나 짧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물론 17평짜리 서민 아파트와 100평짜리 호화 아파트의 구별도 없다. 심지어, 길이가 10cm 밖에 안 되는 선분과 무한대의 길이를 가진 선분과도 ‘같은’ 직선으로 간주되는 세계이다. 이러한 공간을 자연계와 구별 지어 위상공간이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수학여행4 김용운. 김용국 지음. 1991. 김영사)

어떠한 것을 다른 무엇으로 바꾸는 것을 ‘변환’이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변이’라고 한 것은 앞에서 밝힌 위상적 개념과 유사하지만 위상기하학에서 말하는 동상의 요건을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변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위상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고무막’이라는 것을 이용한다. 잘 늘어나는 고무막 위에 삼각형을 그린 후 잡아당기면 그것이 원이나 기타의 도형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 쉬운 일이다. 이렇듯. 잘리거나 덧붙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변형을 위상기하학에서의 ‘변형’인 것이다.

(6)전단사 함수란 위상기하학에서 합동이 될 수 있는 요건 이다. 함수란 일반적인 의미로 대응을 뜻하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집합A와 집합B의 원소가 꼭 한번 씩 대응을 하는 관계이며 역사상(함수)도 성립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두 개의 집합 사이에 전단사 사상이 있다는 것은 이 두 집합의 원소의 개수가 같다는 것을 뜻한다. 무한 집합인 경우에 개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색하지만,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면, 길이가 짧거나 길거나 어떤 선분도 똑같은 ‘개수’의 점들로 꽉 채워져 있다.

————————————————————————————-

고무막으로 만들어진 육면체를 흠집을 내어 잡아 당겨 평면처럼 보이게 한다. 그럼 늘어난 부분은. 실재의 공간이 늘어났을 경우엔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아마도

여기서 좀 더 이해가 필요한 부분들은(작품 중 전시장 실내를 찍은 것을 예로 하면) 같은 벽의 윗 부분과 아래 부분의 길이가 달라지는 데. 이런 경우라도 정보의 농도가 묽어지진 않는다. 고무막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고무분자의 농도가 묽어 지겠지만 사진에선 그대로의 정보를 가지고 있게 된다. 이는 같은 길이를 1cut의 필름으로 촬영하느냐 20cut의 필름으로 촬영하느냐의 차이이다. 1M의 거리를 1cut으로 촬영하면 1M가 사진 필름 하나의 크기로 되지만 20cut으로 나누어 촬영하면 필름 20cut의 길이로 되는 것이다. 결국 둘 다 같은 거리의 정보를 똑같은 양으로 갖고 있으나 찍는 횟수에 의해 물리적인 길이가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닮음 도형(프락탈 도형)(9)󰡑과도 관계가 있다. – 그러므로 정보의 왜곡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모습이 어안 렌즈로 촬영 된 듯 하지만. 어안 렌즈는 고무막과 마찬가지로 대상의 정보를 길거나 짧게(정보의 농도가 변한다) 왜곡시키는 특성이 있어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며, 작품 중의 모든 사진들은 각기 독립된 시점을 가지고 있다. 사진이 400cut이면 400가지의 각기 다른. 독립된(7) 시점이다

————————————————————————————-

(7)위상 기하학에서 변형된 혹은 변환된 공간이 동상이 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를 증명하는 공식이 있다. 그것은 󰡐오일러 표수󰡑이다. 우리들은 사면체, 오면체… 등의 다면체는 한결같이

(면의 갯수) + (꼭지점의 개수) – (모서리의 개수) = 2

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면체에 바람을 넣어서 부풀게 하였을 때 생기는 구면의 성질이다.(예를 들어 축구공 표면에 임의로 다각형을 그려 넣은 후 연결시켜보면 위의 공식이 성립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 관계 즉, 모양이야 어떠하든 입체도형의 표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관계는 사실은 위상기하학의 성질인 것이다. 이것이 곧 ‘오일러 표수’이며 곡률에도 적용된다. 그러니까 󰡐오일러 표수󰡑는 위상기하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선분과 원이 ‘같은’도형이 아니라는 것, 즉 동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 기하학에서는 ‘이어져 있는지 떨어져 있는지’하는 문제가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도형의 이어진 상태’ 를 연구하는 기하학적인 위상기하학은 도형을 대국적으로 다루는 기하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이 현미경으로 세포의 조직을 조사하는 경우라면, 토폴로지는 망원경으로 드넓은 우주를 관측하는 일에 비할 수 있다.’

[1608년의 가을, 당시 이태리 파도아 대학의 교수였던 갈렐레이는 자신이 만든 배율 30배의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했다. 인류 역사상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우주는 유한‘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이 완전히 무너지고, 대신 무한대의 우주관이 등장하는 것은 이 순간부터의 일이다. 이 망원경이 과거의 낡은 우주관을 허물어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면, 󰡐동상󰡑이라는 개념은 과거의 기하학관을 무너뜨리고 위상수학이라는 아주 드넓은 기하학의 세계(과거의 기하학은 그 속에서 아주 작은 위치를 차지하는데 지나지 않는)를 보여주는 ’망원경‘의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재미있는 수학여행4 김용운. 김용국 지음. 1991. 김영사)

(8)나의 작업을 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사진을 광각으로 찍은 후 크게 인화하여 잘라낸 것이라는 반응이다. 내가 이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광각(어안)렌즈로 촬영하고 크게 프린트 하게 되면 나의 작업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굳이 카메라로 촬영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캔버스나 종이에 그리면 된다. 나의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그림으로 표현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캔버스나 종이에 그려진 그림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물론 그려진 그림을 보고 연상을 하게 되겠지만, 실질적인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엔 그냥 물감이 발라져 있을 뿐이다. 확대된 사진도 나와는 관계가 없다. 내가 굳이 공들여 Cut을 나누는 의미는 ‘개별된 시점’이외에 왜곡과 원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에 약간의 원근이 들어가지 않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작게 나누어진 사진 속에서는 무의미해진다. 이것은 마치 ‘무한히 큰 원의 곡률이 작게 잘라보면 직선과 같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입체로 만들라는 충고를 한다. 어릴 적의 일이 생각난다. 월간 만화 잡지(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보물섬 등.)에 나오는 종이 공작이 바로 그것이다. 비행기나 배, 자동차를 전개도처럼 그려놓고 그것을 오려서 접거나 풀로 붙이면 입체가 된다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종이를 오려 조립한 사람보단 전개도를 그린 사람이 머리가 더 좋은 것 같아서 입체로 만들기보다는 평면의 전개도를 만들고 싶었다.

(9)프락탈 도형이란 수 없이 자기 반복을 하는 도형이다. 자연현상에서 나타나는 자기닮음 도형으로는 지형, 그름, 번개, 식물, 땅의 갈라진 금, 담배연기,… 등등이 있다. 해안선의 경우 길이에 대한 정확한 측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유는 길이를 측정하는 기준인, 자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1Km 길이의 자로 측량하느냐. 1Cm의 자로 측량하느냐에 따라 그 길이는 달라질 것이다. 즉 길이란 기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유명한 󰡐자기닮음 도형󰡑 으로는 󰡐코흐 곡선이 있다. 이것은 한 개의 선분을 3등분하여, 그 중앙 부분을 정삼각형의 두 변처럼 생긴, 길이가 같은 두 선분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까 전체로서는 처음 길이의 4/3로 늘어난 것이다. 다음에는 이 꺾은선의 1/4의 길이의 각 선분을 3등분하여, 또 그 중앙부분을…과 같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 한 곡선이다. 이것을 계속하면, 꺾인 선의 모양은 더욱 더 미세하게 세분되어 마치 눈이 결정처럼 아름다운 형태를 이룬다. 이 때문에 이 곡선은 󰡐눈송이 곡선,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해안선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러한 코흐 곡선의 차원은 일반적인 정수가 아닌 비정수의 값을 가진다. (코흐 곡선의 차원은 1.26) 리아시스식 해안선의 경우도 L(길이)의 차원은 비정수가 된다. 자기닮음 도형 중에서 닮은비로부터 산출되는 차원이 정수가 되지 않는 것을 ‘프락탈 도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수학여행4 김용운. 김용국 지음. 1991. 김영사)

————————————————————————————-

공간을 평면 속에 우겨 넣기

이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1) 일 것이다.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자신이 보았던 대상물을 증거하기 위해서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했을 것이며. 이렇게 인간은 자신이 보았던 공간을 평면 위에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좀 더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마치 실제 하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게 되어졌다. 그러나 그림은 어디까지나 캔버스 위에 발라진 물감일 뿐이며, 인간이 공간을 가지는 대상을 보는 것도 사실은 단지 망막 위에 비친 평면 일 뿐이다. 인간이 공간을 지각하는 이유는 영화의 필름처럼 연속적으로, 그리고 움직이면서 대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대상을 지각하는 데는 어쩔 수 없이 시간(2)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의 한 단편인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향수로서 다가오며, 그것이 자신의 기억과 함께 버물려져 실재감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적 어린이 잡지책을 보면서 난 항상 공상에 빠지곤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하면서 시작되는 기사들의 대부분은 ‘외계인’과 ‘버뮤다 삼각지대’ 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4차원의 세계’였다. 4차원의 세계(3)란 어떤 곳일까. 내가 아는 바로는 ‘4차원이란 시간을 초월 할 수 있는 곳‘이라 들었다. ’시간을 초월하는 곳‘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바라보는 사물들은 어떻게 보일까? 시간을 초월한다는 뜻은 A에서 B로 이동 할 때 시간이 0이어야 한다는 의미 일 것이다. 시간이 0라면 4차원의 생물체들은 무한대의 속도로 이동 할 수 있다는. 아니 항상 무한대의 속도로 움직이어야만 한다는 뜻 일 것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을 만난다. 무엇을 보고 있다. 음악을 듣는다. 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행위들이. 아니 행위라는 것 자체가 이미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이니까.

————————————————————————————-

(1)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대상을 평면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이란 전개도처럼 펴놓아야 하거나 혹은 잘게 부수어서 펼쳐 놓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대상이 공간을 특정하게 점유하는’ 그 특수한 상황을 변질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처음에 밝혔듯이 위상기하학을 응용한다고 해도 찢기거나 끊어진 도형은 서로 같지 않다.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2)시간 = 속도 / 거리

(3)1차원은 직선상의 한 점을 의미한다. 이 곳에선 앞이나 뒤로밖에 움직일 수 없다. 2차원은 평면상의 임의의 점으로 가로와 세로의 개념이 존재하며, 3차원은 가로, 세로, 높이가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4차원은 흔히 설명하기를 가로, 세로, 높이 이외에 시간을 포함시키는 개념이다. 우선 평면과 공간의 차이를 말하자면, 평면상에서는 ‘평행하지 않는 두 직선‘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지만, 공간에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 할 수 있는 예로는 ’인터체인지(입체 교차로)‘를 들 수 있겠다. 이 입체 교차로를 평면상에 표현하면 서로 겹치게 되지만 공간상에서는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겹치게 되면 그 길이 가지는 목적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 그런데, 공간상에서 평행도 아니고 만나지도 않는 ’서로 꼬인‘ 관계라는 게 있다. 이것은 클라임 병(위, 아래가 구멍이 뚫린 튜브 형태의 물체 양쪽 입구를 붙일 때. 한 쪽 끝을 튜브의 어느 부분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으로 집어넣어 튜브의 안쪽에서 나머지 반대쪽의 입구와 붙인 형태.)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클라임 병은 병의 내부와 외부가 이어져 있는 형태이며, 이것은 두개의 뫼비우스 띠를 붙인 것과 같은 형태를 가진다. 그리고 면이 하나인 관계로 물을 담을 수 없다. 물을 부으면 내부가 곧 외부이므로 물이 쏟아지게 된다. 실제로 이 크라임 병은 약간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그건 병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점이다. 구멍을 뚫으면 위상기하학에서 동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억지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4차원의 공간을 3차원으로 설명하기 위한 한 방편이기에 생기는 문제점이며, 실제 4차원에선 구멍을 뚫을 필요가 없다. 4차원에서 시간의 개념이 들어간다는 것은 시간에 구애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Ñ 자유롭다는 의미(만일 2차원에 3차원의 독수리가 가게 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독수리는 그야말로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다. 독수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독수리가 하늘에 떠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2차원의 사람들이 키우는 가축들을 채가기 위해서 땅에 내려 올 때 잠깐 보일 뿐이다. 이처럼 3차원의 요소 중 높이는 제약이 아니라 2차원과 비교해선 자유가 되는 것이다.) 이기에 구멍을 뚫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튜브의 내부로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임 병은 외부와 내부의 구별이 없는 4차원의 특수성을 말해주는 기구이다. 이렇듯. 4차원에서는 건물의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그 내부까지도 볼 수 있다. 이 말은 3차원에서처럼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둘러보기󰡑의 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은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기 때문에 4차원에서는 모든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즉 3차원의 인간에 빗대어 본다면 어릴 적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선 자신의 실수나 안타까움. 회한의 감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은 4차원의 생물이 바라보는 모든 것에 관련된 것이다. 그가 바라 볼 때. 특정한 어떤 사물의 경우가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이 동시에 보이며.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안과 밖의 구별 없이 동시에 보인다는 것이다

————————————————————————————-

그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 대신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니 한편으로는 3차원의 세계에 사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기독교에서 ‘신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고 한다. 하나님은 손오공처럼 분신술(프락탈 속임수)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60억 인구의 수만큼 많이 있는 걸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는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한 곳(고정 된 위치)에서 세상 모든 것을 바라 볼 수 있다. (그것도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러고 보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도 시간을 초월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거리가 0이면 시간도 0일 테니까.) 라고 말이다. 그런데 한 눈에 세상이 다 보인다면 어떻게 보일까? 엄청난 수의 CCTV를 보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동시에 이해 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동시에 보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무척 복잡해진다. 그래서 범위를 줄여 어떤 특정한 공간을 생각해 본다. 그 곳이 나의 방이라고 설정해 보았다. 천장이 있고 벽이 있고 바닥이 있다. 그리고 책상도 있고 그 위에는 책과 컴퓨터가 있습니다. 책장과 그 속에 책들과 만화책이. 그리고 옷장과 이부자리 등등이 있다. 그런데 조그마한 내방도 한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파리나 카멜레온처럼 머리 위나 바닥. 그리고 뒤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부분을 보기 위해선 고개를 돌리면 그 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분명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 데.

360’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도 광각 렌즈처럼 휘어서 왜곡되어 보이지 않게 말이다. 아마도 불가능 할 듯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보일까? 6면을 가진 방이 한 눈에 보이려면 입체로 보이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입체로 보이면 안 보이는 반대 쪽 면을 보기 위해 움직여야하고 그렇게 되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래서 반드시 평면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광각 렌즈처럼 휘어져서 왜곡되어선 안 되는 건 기본적인 전제이다.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내는 순간. 그 물체는 다른 장소로 이동해 버리니까. 움직이는 물체는 그 위치를 예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물체의 움직이는 속도를 알 수 있으면 위치를 알 수 없고, 위치를 알게 되면 속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위치는 곧 변해버리니까 방금 알아낸 위치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살아있는 물체는 항상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넘어지는 물건을 넘어지지 않게‘

디즈니 만화와 일본 만화를 생각해 본다. (다른 나라 만화는 잘 모른다.) 디즈니는 모두 잘 알다시피 엄청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그 이유는 당연히 많은 그림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초당 프레임 수가 최소 24프레임 이상이며 때로는 32프레임이 넘기도 한다. 그러니 자연스러울 수밖에. 그리고 그림의 수가 많다는 것은 당연히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자본의 논리. 미국 자본의 침략. 디즈니 만화는 미 제국주의의 첨병이다. 등등…. 의 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일단 그런 것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뿐더러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단지 그림이 많이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돈도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전까지 대상에 대해 가장 다양한 각도로써 설명해준 만화가 아마도 디즈니 만화가 아닐까 한다.(움직임이 부드럽다는 말과 상통한다고 본다.)그 후로 디지털 기술까지 이용하면서 동작과 상황의 사실감은 더욱 치밀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디즈니 만화를 보면서 만화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실사 영화를 보는 듯 한 착각을 느낀다.(무의식적으로) 일본은 요즘 만화 산업이 최악의 상황으로 미끄러지고 있다고 한다. 상승하는 인건비와 늘어나지 않은 제작비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만화를 보면 별별 방법이 다 나온다. 2콤마, 3콤마(1)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점프 컷(2)이나 정지장면에 배경만 바꾸고 심지어는 글자로 땜질하기도 한다.(나레이션만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본 만화가 더 재미있다. 그들의 위급한 상황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방법들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비는 만큼 다른 것들로 채워 질 여지가 있는 것이다. 디즈니 만화를 보면서 상상력이 발달한다는 것은 정말로 상상도 못할 일이다. 디즈니 만화에는 기술(technology)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도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만화의 입장에서 볼 때 기술은 그 후에 오는 것이다. 디즈니는 엔지니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이다.

————————————————————————————

(1)1콤마 애니메이션을 통상 풀 애니메이션(Full Animation)이라고 한다. 이 ‘풀 애니메이션’은 영화관에서 영사하는 필름의 수와 같고 TV의 화면 변경 수와 같다. 이것은 주로 초당 24프레임 수를 가지며, 이 수가 정지된 화면을 움직이는 동작으로 느끼는데 있어. 인간이 실제 사물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최소 프레임 수라고 한다. 2콤마 애니메이션이란 초당 프레임 수가 1/24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이 초당 12장만 영사한다는 뜻은 아니고 12장을 각각 한 번씩 복사하여 중간에 끼워넣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12종류의 그림이 24장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3콤마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이건 최대한의 제작비 절감을 위한 방법으로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 만화의 대부 ‘데즈카 오사무’가 처음으로 시도 했던 방법들이 바로 ‘콤마‘애니메이션이다. 일반적으로 60분짜리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선 24 x 3660 = 86400장이라는 엄청난 수의 그림이 사용되어진다. 만약 120분짜리 대작의 경우는 이 두 배가 된다. 거기다가 수 백, 수 천의 배경 화면 까지 들어간다면, 그 비용은 엄청나다. 일찌기 󰡐만화의 TV시대¸맛Ì 일본만화의 살 길이라다.󰡑라고 주장한 데즈카 오사무는 짧은 제작기간과 적은 비용을 맞추기 위해 ’콤마‘애니메이션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의 대표작 ’철완 아톰‘의 경우 심지어 초당 2프레임만 사용된 적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어떤 사람이 ’미국만화는 액션의 경우 치는 동작이 주로 표현된 반면 일본만화는 칠려는 동작과 치고 나서의 동작이 많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려놓았다. ’콤마‘애니메이션을 이해하면 이 답은 간단하다. 치는 동작은 말 그대로 움직임이다. 그러나 치려는 동작과 친 후의 모습은 정지된 상태다. 즉. 그림이 한 장이면 상황을 훌륭히 표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2)최근의 만화에서 이 점프 컷(Jump Cut)을 사용한 감독 중에서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감독은 ‘가와지리 요시아키󰡑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수병위인풍첩(국내 개봉명 무사 쥬베에)’(93)에서 절묘한 점프 컷의 사용으로 전 세계에서 찬사를 받았다. ‘….[수병위인풍첩]에서 이 같은 단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되어진다. 도저히 애니메이션이라고 믿어 지지 않는 액션의 박진감과 쾌속성은 그림과 그림 사이를 과감히 생략하는 󰡐절약의 정신󰡑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주베에(주인공의 이름)가 한 지점으로부터 다른 한 지점으로 도약을 하며 상대방을 가격하는 경우, 감독은 익스트림 롱 쇼트에서 짓뭉개지는 얼굴 클로우즈 업에까지 그대로 카메라를 따라주면서 한 커트 내에서 중간 부분의 동작을 뭉텅 들어낸다. 대신 생략과 생략 사이에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정교하고 빠른 디졸브를 살짝 걸어 줌으로써 화면은 튀는 부분 없이 맹렬한 속도감을 얻는 것이다.󰡑 (키노(KINO). 1996. 11월. 20세기 저패니매이션 소년 소녀 독본 1963 -1996. 중 김익상의 글)

————————————————————————————-

나의 작업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단속을 한다. 그 이유는 내가 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보는 것만 보여주고 싶다. 더도 아니고 딱 그만큼 이면 된다. 그럼에도 나의 작업에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찾은 사람들은 정말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보든지 자기가 소화해내는 사람이거나 그 이상의 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면 엔지니어이든지.

‘구르면 아프고… 언니는 몰라주고… 이런 거 탈만한 게 못돼.’ 자전거를 못타는 어린 여신이 자전거를 배우다 포기하고 강가에 나왔다가 한 소년에게 한 말이었다. 그 소년은 물론 자전거를 잘 타고 좋아하는 소년이다. 그 소년이 점프 묘기를 하다가 넘어지자 일으켜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러자 그 소년은 ‘무슨 소리야. 넘어지니까 재미있는 거지.’ ‘넘어지는 물건을 넘어지지 않게 타니까 재미있는 거야. 넘어지지 않는 물건을 넘어지지 않게 타는 건 재미없잖아.'(3)

‘넘어지는 물체를 넘어지지 않게 사진을 찍기’자전거를 찍으면 너무 속보이니까 팽이를 찍기로 했다. 그래서 다중촬영을 시작했다. 전부터 최소한의 사진으로 대상의 모든 부분을 표현하고자 했던 나의 의지와 잘 맞는 듯하다.

다중 촬영이란 하나의 필름에 여러 가지 이미지 혹은 여러 번의 노출을 작용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필름에 여러 번의 노출을 가하여 필름에 감광 시키는 것이다. 사물을 한 가지의 방향이 아닌.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하되. 하나의 필름만을 사용한다. 팽이의 사진은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팽이를 제 위치에서 돌려가며 9번씩 다중촬영을 한 것이다. 그리고 ‘Growing Up’은 휴지를 풀어 내리면서 다중촬영을 하였고, ‘꽃’은 꽃잎을 한 장씩 떼어내면서 촬영을 하였다. 그래서 수술과 암술과 더불어 꽃잎의 모든 부분을 하나의 필름에 모두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의 결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 장 노출로 찍은 사진과 구별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카메라 작동의 과정이 전혀 틀리다. 특히 내가 구분하여 생각했던 것은 ‘장 노출과 다중노출 중에서 어느 것이 정보를 덜 왜곡 시키는가’였다. 결론은 다중노출이라고 생각되었다. 장 노출로 찍은 사진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 사진이 달리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자 그 사람의 팔과 다리는 뿌옇게 흐려져 있을 것이다. 즉 팔과 다리의 정보가 길게 늘어져서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팔과 다리의 정보가 제자리에 없게 된다. 다중촬영은 여러 가지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지만 왜곡되진 않았다. 식별의 곤란함을 느끼지만 정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팽이의 사진은 팽이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정지한 팽이를 돌려가며 찍은 것이다. 하나의 필름에는 팽이의 9가지 각도의 정보가 들어있다.

————————————————————————————-

(3)‘오! 나의 여신님’(Oh! my Goddess)13권. 1996 6월. Kosuke Fujishima. Chap.73. 도서출판 대원. Page 36. 스쿨드와 센다의 대화중에서.

Leave a comment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Note: HTML is allowed. Your email address will never be published.

Comments Feed

%d bloggers like this: